장수 황씨
장수 황씨는 신라 말기 시중을 지낸 황경(黃瓊)을 시조로 하며, 경순왕의 사위였던 황경의 후손인 황석부를 기세조로 삼아 전북특별자치도 장수군을 본관으로 이어온 가문입니다.
이 가문은 조선 세종 때 무려 18년간 영의정을 지낸 명재상 황희(黃喜)를 배출하며 최고의 전성기를 맞았는데, 황희는 세종묘에 배향되었고 그의 아들 4형제(치신, 보신, 수신, 직신)를 파조로 하는 4개 분파(호안공파, 소윤공파, 열성공파, 사직공파)가 형성되었습니다.
조선시대에 문과 급제자 44명을 배출한 대표적인 명문가로, 황희의 장남 황치신은 우의정에 추증되었고 셋째 아들 황수신은 남원부원군에 봉해져 영의정에 올랐습니다. 특히 시조의 9세손인 황공유는 고려 명종 때 무신 이의방의 난을 피해 고향 장수로 돌아왔다가 남원(광한루 일대)으로 이주하여 세거하였습니다.
2015년 인구주택총조사에서는 약 17만 명(170,988명)으로 집계되었으며, 전북 남원, 경기 파주, 세종·충청 지역 등에 집성촌을 이루며 살고 있습니다.
Source: 장수 황씨 — Wikipedia · Summary by RollWiki AI · Language: Korean